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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시) 시와 함께하는 주말 , 안개마을 - 김수현

창작시 스물

김수현 기자 | 기사입력 2024/05/04 [08:02]

(단편시) 시와 함께하는 주말 , 안개마을 - 김수현

창작시 스물
김수현 기자 | 입력 : 2024/05/04 [08:02]

 



안개마을

 

 

예전에 이 마을은 곶감이 명물이어서 감나무골이라 불리었다.

 

1

언제부턴가

마을의 모든 일에 물기가 묻어났다

사람들은 젖어 드는 옷자락이

이슬 탓이려니 했다

두어 번 탁탁 털어 버리면 될

하찮은 것으로 여겼다

칠칠 감겨 드는 안개의 마법에 갇혀서

하는 일마다 꼬이는 것에

안개가 끼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는

엉뚱하게도 오래전에 水沒되어 떠난 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고향을 찾은 그도 처음에는

미세한 깃의 안개 떼가

들판을 점령하고 온 마을을 삼키고

뒷산을 휘감아 도는 장관에 마을 사람들처럼 

넋을 잃었었다. 

 

2

부지런한 영만이는 삶의 유일한 희망 감나무에 올라

감 따다 떨어져 반신불구 되고

술꾼 길 씨는 소 파동에 농약병을 나발불고

부잣집 박 생원의 큰아들은

실연 당해 제초제 탄 소주를 마셔버렸다

영농후계자 덕배는

잘 열린 감자알처럼 주렁주렁 엮인 조합 빚에

다시 못 올 길을 떠났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마을의 질긴 불행에

종신 이장 김 씨는 마을회의 열어

새마을운동 이후, 걸러 오던

당산제를 다시 지내고

서낭신을 다시 모시고

정월 대보름에 지신밟기까지 했지만

사람들 愁心처럼 바닥이 높아만 가는

마을 앞 川을, 바람의 등 타고

가뿐히 건너온 안개는

언제나 아침보다 먼저 동구 밖

마을의 수호신 당산나무를 껴안고

발 빠른 몇 점의 선봉대는 

낮은 토담 넘어 이집 저집 문지방을 기웃거렸다.

 

3

촘촘히 잘 짜여진 안개의 망에 에어 둘린

연홍색 감들의 짓무른 상처

종내에는 사람까지 허물어 버린

회색의 강에서, 오랜 연륜의 바람개비 돌리면

낮게 엎드린 하늘이 구름 위로 되올라간다

하늘의 살짝 열린 틈으로 태양이 고개 내밀면

어둠을 시나브로 밀쳐내는

여명의 힘처럼 포만한 안개의 살갗 뚫고

뻘, 뻘, 뻘ㆍㆍㆍ

땀 흘리며 일어서는 감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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